이웃사촌
W.닻별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애가 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직접 태형이형이 다니는 대학교까지 찾아가기로 했다.
지금 쯤이면 형도 끝나지 않았을까
먼저 키스까지 할 정도면 좋은 쪽으로 대답이 나올거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정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3년 동안 질질 끌었던 짝사랑이 오늘 안에, 어쩌면 곧 끝이 난다는것에 시원섭섭한 기분과 함께 가슴 한켠이 시려왔다.
이제는 정말 끝맺음을 해야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이제 마지막 수업도 끝났을텐데"
두리번 거리다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여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태형이ㅎ..."
아는척을 하려 했는데 태형의 옆에서 같이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린 정국이였다.
1년전 쯤인가 여느날과 다름없이 태형의 집에 놀러갔던 정국이 목격한 것은 꽤 충격적인 모습이였다.
태형과 같은 또래로 보이는 낯선 남자가 태형과 진하게 키스를 하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고서야 정황상 섹스를 하기 직전인 둘의 모습에 그날은 그간 모아뒀던 눈물들을 다 쏟아내기라도 하듯이 밤새껏 울고 또 울어서 다음날 태형에게 붕어라는 놀림까지 당했었기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짝사랑 상대가 섹스하려는 모습을 본 것도 모자라 그 상대방이 지금 태형과 같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저 남자라니
금방이라도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였다.
"어? 꾹아?"
"꾹? 얘가 네가 말한 정국이란 얘야?"
"안녕하세요..."
언제 발견한건지 동그란 정수리만을 보고도 정국이란걸 알아챈 태형이 말을 걸어왔다.
옆에 딸려 온 그 사람도 자신과 자주 만난 사이인 것 마냥 아는척을 해왔다.
"끝나고 전화한다고 했잖아 추운데 여기서 기다렸어?"
평소와 같이 다정한 손길로 두 볼을 감싸며 물어오는 태형에 기껏 참고 있는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괜히 코를 킁킁대며 시선을 피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요 괜찮으니까 손 떼도 돼"
"안녕 정국아! 난 박지민이야 태태랑 동갑이고 같은과 다니고 있어"
자신보다 작아보이는 키에 환하게 미소를 짓자 접히는 눈꼬리와 그 주위로 과하지 않을만큼 붙은 살이 귀여움을 극대화 시켜 서글한 인상을 풍겼다.
누구나 다 귀여워할만한 페이스에 성격도 밝아 보이는게 자신과는 정반대인 모습이 태형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안그래도 우울했던 기분이
이제는 땅을 파고 들어갈 지경에 이르렀다.
"전정국 스물이에요"
"우리보다 두살이나 어리네? 귀엽다"
자연스럽게 볼을 잡아 당기는 손에 이걸 물어버려야하나 싶었는데 때마침 지민의 손을 쳐내는 태형이였다.
"박지민 수작 부리지마"
"정국이가 귀여워서 우쭈쭈 해준거야"
태형이형이 지민이라는 사람을 좋아해서 질투하는걸까
자신도 모르게 태형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는지 할 말 있냐고 묻는 형에 고개를 젓는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형 할 얘기 있다고 했잖아요"
"맞다 어디로 갈까 요 앞에 카페 갈까?"
"뭐야 둘만 노는게 어디있어 나도 껴줘"
"매일 놀러다니면서 지겹지도 않냐"
"너 말고 꾹이랑 놀고싶은거거든"
"네가 뭔데 정국이를 꾹이라고 불러 임마!"
"나는 부르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어? 없잖아"
누가 태형이형 친구 아니랄까봐 유치한걸로 싸워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게 똑 닮았다.
나름의 라이벌이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쉽게 물리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보는 정국이였다.
"형 그냥 집가서 얘기해요"
"단 둘이 집에가서 뭐하려고?"
"뭐하긴 얘기하러 가는거지"
"정국아 조심해 쟤 완전 늑대야"
오늘 처음 본 사이면서 사교성 좋게 어깨동무를 하더니 귓가에 속삭이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였다.
금방이라도 팔을 떨쳐내며 늑대인걸 어떻게 아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일단은 태형의 친구였고 자신 때문에 태형에게 피해가 가는건 정말 싫었기에
잠자코 지민의 말을 듣고있었다.
"저번에 한번 둘이서 술 마신 적이 있었는데 대뜸 키스를 해대더라고 그러니까 정국이도 조심해 큰일나~"
말안해도 다 아는 사실이였다.
단 둘이 술을 마신 날이 내가 목격한 그 날일 것이다.
태형이형이 술김에 키스를 한 것이라면 이 사람은 왜 밀어내지 않았고 그 날 어디까지 진도를 뺐으며
지금 둘 사이는 무슨 사이인지 물어보고 싶은게 너무 많았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침침 너 꾹이한테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내가 뭘?~"
"이자식이!"
"아 약속 늦겠다 나 먼저 가볼게 태태야 귀여운 꾹이도 안녕~~"
"다리도 짧은게 뛰다 다친다"
벌써 애칭까지 정한 사이라면 누가봐도 사귀는 사이잖아
결국 쌓였던 설움이 폭발했는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황급히 고개를 숙여 옷소매로 눈을 부비며 닦아보았지만 여태껏 참았던 탓인지 그치는게 쉽지않았다.
"꾹아 이제 가자"
지민이 가는 모습을 눈으로 배웅하던 태형이 고개를 돌리자 정국이의 어깨가 떨리는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역시 오래 기다려서 추웠지? 괜찮은 척 하기는 얼른 따뜻한 곳으로 가자"
어깨를 감싸고 끌어당기려 했는데 도무지 발을 뗄 생각을 안하는 정국에 고개를 숙여 가까이 다가갔다.
"정국아 전정국 안갈꺼야?"
갑자기 고개를 홱 쳐드는 바람에 정국이의 머리와 태형의 코가 부딪혔다.
꽤 세게 부딪혔는지 찡하게 울려오는 코를 부여잡고 정국이를 쳐다봤는데 눈가가 벌게진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형은!...아무하고나 키스해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숨 넘어갈듯이 울더니 큰소리로 외친다는게 저 소리다.
그것도 사람 많은 대학교 정문에서 말이다.
"정국아 일단 좀 집에가서 얘기하자 응?"
"됐어요! 얼른 방금 그 지민인가 지만인가 망개떡 같은 사람한테 가서 키스하고 섹스하고 다 하란 말이에요!
사람 가지고 놀아요? 어제는 저한테 키스하더니 저번에는 ㅈ..."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몰리는 시선들에 정국이의 입을 막고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단편 > 이웃사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랩슙] 이웃사촌 03(암호 : 0903) (0) | 2017.02.09 |
---|---|
[랩슙] 이웃사촌 02 (0) | 2017.01.18 |
[뷔국] 이웃사촌 02 (0) | 2016.12.28 |
[랩슙] 이웃사촌 01 (0) | 2016.12.21 |
[뷔국] 이웃사촌 01 (0) | 2016.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