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트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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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그리스신화에서 등장하던 사랑의 결실을 맺어준다는 큐피트가 현실에도 존재했다면 아마 멍청하다못해 미련한 놈이지 않을까 싶다.

내 큐피트가 실수로 저녀석한테 화살을 쏜건 아닐까

무뚝뚝하고 조용하고 얼굴만 반반한 저 후배녀석에게 말이다.

 

 

 

 

 

 

 

 

"윤기형! 여기요!"

 

 

 

 

 

 

 

 

시끄러운 비글 한마리, 그나마 조용한 비글 한마리를 각각 양 사이드에 끼고서 밥을 먹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시선이 몇초간 서로에게 머물러 있다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밥을 퍼먹는 동그란 정수리를 보며 입술을 씹어댔다.
녀석의 얼굴에 떠오르는 저 표정을 볼때마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렇게 크게 안불러도 알아들어"

 

 

 

 

"오늘 소세지볶음 진짜 맛있어요"

 

 

 

 

"너나 많이 먹어"

 

 

 

 

 

 

 

 

동문서답이 주특기인 김태형답게 소세지볶음 찬양이나하고 앉아있는 모습이 22살이 아니라 2학년 2반 초등학생 같았다.
분명히 머리로는 김태형이나 박지민 앞에 앉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몸이 지멋대로 전정국 앞에 자리를 잡은 탓에 쉬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묵묵히 밥을 먹고 있던 정국의 시선이 젓가락으로 반찬들을 뒤적거리고 있는 윤기의 식판으로 향했다.
툭하면 사소한걸로 옥신각신하는 비글 두마리를 구경하던 윤기가 열심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자신의 식판을 뚫어지게 보고있는 정국이를 발견했다.

 

 

 

 

 

 

 

 

"먹을래?"

 

 

 

 

 

 

 

 

언제 다 먹은건지 식판 가운데가 비어있었다.
소세지 볶음이 놓여있던 자리 같은데...자신의 식판에 놓여있던 소세지 하나를 집어들어 내밀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정국이 자연스레 입으로 받아먹었다.
놀란 윤기의 표정을 본 정국이 자신이 무의식중에 한 행동을 알아차리고는 굳은 표정으로 우물거리던 입을 멈췄다.

보통 건네주면 젓가락이나 숟가락으로 가져가 먹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아기새가 모이를 받아먹듯 바로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윤기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갑자기 벌떡 일어선 정국이 말없이 식판을 집어들어 식판 수거대로 가져다 놓고는 재빠르게 학생식당을 빠져나갔다.

 

 

 

 

 

 

 

 

"야! 꾹아 어디가!"

 

 

 

 

"정국아! 나 아직 다 안먹었는데, 형 저희 먼저 가볼게요!"

 

 

 

 

 

 

 

 

한참을 투닥거리다가 뒤늦게 정국이가 나가는 뒷모습을 확인한 태형과 지민이 헐레벌떡 뒤를 쫓았다.
남겨진 윤기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시발...귀여워"

 

 

 

 

 

 

 

 

 

 

 

 

 

 

 

 

 

 

 

 

 

 

 

 

 

 

 

 

 

전공수업은 그렇다쳐도 교양수업은 다른 학과랑 같이 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생판 모르는 얼굴들이 가득한 수업을 듣는것이 일반적이였다.
이제 지긋지긋한 교양수업도 이번학기가 마지막이였고 자신이 나름대로 흥미를 느끼는 과목이였기에 기분좋게 강의실문을 열고 들어선 윤기였다.
아직 수업시간까지 널널하게 남은 탓인지 빈자리가 가득했고 교수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강의내용은 잘 보일만한 좋은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창가쪽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익숙한 정수리가 눈에 띄였다.

 

 

 

 

 

 

 

 

"전정국이다"

 

 

 

 

 

 

 

 

이제 동그란 정수리만 봐도 그녀석인걸 알 정도가 된 자신이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낮게 읊조린 윤기가 지체없이 걸음을 옮겼다.
비어있는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자 흠칫한 정국이가 누군가하고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전정국 너 이 수업듣냐"

 

 

 

 

"네"

 

 

 

 

 

 

 

 

언제나 시선도 맞추지 않고 내뱉는 저 단답이 사람 속을 뒤집어놨다.
무심한 표정, 할말 없게 만드는 대답, 돌아가버린 고개 이 쓰리콤보를 겪는 날에는 하루종일 답답한 가슴앓이를 해야했던 윤기였다.
이젠 그마저도 익숙해지려고 하니 사랑을 하는게 아니라 체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순적인 하루 하루에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할지 막막했다.

큐피트 이새끼는 좋아하게 만들었으면 상대방을 어떻게 꼬셔야 하는지 알려주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전정국 가슴에 화살이라도 쏘던가 해야지

 

 

 

 

 

 

 

 

"너도 이 과목에 관심있었어?"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순간 앞뒤 상황 다 자르고 좋아했다는 말만 들었으면 고백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안그래도 흰 피부 탓에 붉어지면 금새 티가나는 윤기였기에 '아, 그렇구나' 대충 얼버무린 후 졸린 척 팔에 고개를 파묻고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할말이 없게 만들었지만 24살이나 되서는 짝사랑 상대를 눈앞에 두고 수줍어 한다는게 자기자신이 느끼기에는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였다.
좋아한다는 마음이란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과를 위하여~!"

 

 

 

 

"위하여!"

 

 

 

 

 

 

 

 

윤기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과모임이였다.
그냥 오순도순 모여서 회의하고 밥먹는거면 괜찮은데 꼭 호프집을 장소로 정해서 술을 퍼마신다는게 맘에 들지 않았다.
물론 술을 마시는것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였다, 다만 술자리를 빌미로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후배를 꼬신다던가 하는 그런식의 수법이 비일비지하니까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우리 게임하자 게임"

 

 

 

 

"**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무슨게임~ 게임 스타트!"

 

 

 

 

"눈치게임 1!"

 

 

 

 

"2!"

 

 

 

 

 

 

 

조용히 술 좀 마시려고 했더니 게임을 하자는 말이 나오자 시끄러워진 테이블에 인상을 찌푸리던 윤기가

일찍 끝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5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맞은편에 앉아있던 정국이도 같이 몸을 일으켰다.

전정국이랑 같이 일어났다, 통한건가

 

 

 

 

 

 

 

 

"오오~! 민윤기랑 정국이 러브샷 가자 러브샷"

 

 

 

 

"남자끼리 뭔 러브샷이야"

 

 

 

 

"야! 우리과 대부분이 남자거든? 재미없게 이럴래?"

 

 

 

 

 

 

 

 

얼른 하라고 부추기는 목소리가 하나 둘 커져가고 당황한 표정을 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정국이를 보며 짝사랑 상대랑 러브샷이라니

좋아해야 될 일인지 곤란해야 할 일인지 알 수 없는 윤기가 걸음을 옮겼다.
서로 마주보는 상태가 되자 평소에도 큰 눈이 몇 배는 더 커져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정국이의 얼굴 탓에 이상한 기분이 드는 윤기였다.

어차피 끌어안고 술만 마시면 되는건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건지

술잔을 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오는게 행여나 누가 볼까 급하게 정국이 뒷목으로 팔을 감싸며 속삭였다.

 

 

 

 

 

 

 

 

"얼른 하고 끝내자 잔 들어"

 

 

 

 

 

 

 

 

살짝 떨려오는 목소리를 알아챘을까
정국이의 표정이 어떤지 보고싶었지만 거의 끌어안는듯한 자세에 보이는거라곤 고르게 자리잡은 귀와 곧게 뻗은 목덜미뿐이였다.
이 자식은 귀도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뒷목을 감싸오는 정국이의 손길에 망설임 없이 잔을 들이켰다.
몇초도 안걸렸을 그 시간만 늘어난 테이프처럼 천천히 스쳐지나가는 느낌에 쓰디 쓴 술맛이 배로 느껴졌다.

전정국 귀 빨개졌네

 

 

 

 

 

 

 

 

 

 

 

 

 

 

 

 

 

 

 

 

 

 

 

 

 

 

 

 

 

 

같은 교양수업을 들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종강이라니 하늘이 무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못내 아쉬운 윤기였다.
유일하게 정국이를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졸음이 쏟아질 것 같은 교수님의 수업도 열심히 들을 수 있었고

가끔 잠을 못이기고 꾸벅꾸벅 조는 정국이를 몰래 구경하면서 만족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였다.
종강이란 단어가 들려오자 이제 곧 방학이라는 것과 이 녀석 없는 몇개월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오늘 이 수업 종강이잖아 기분 좋냐"

 

 

 

 

"네 방학이니까"

 

 

 

 

 

 

 

 

방학이니까 들떠있을줄 알았는데 묘하게 가라앉은 얼굴하며 약간의 뜸을 들이면서 말하는 것도 그렇고 기분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너도 기분 안좋냐 나도 기분 안좋은데 너 못보니까

속으로는 얼마든지 떠벌릴 수 있는 말을 곱씹으며 출석체크를 하시는 교수님의 부름에 애써 담담한척 크게 대답했다.
다른 수업때보다 훨씬 더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었다.
옆에 있는 전정국 또한 그런것인지 아까부터 공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고 지우고 반복하고 있었다.
내용이 궁금해서 조금이라도 정국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려고 하면

거의 엎드리다싶이 고개를 숙이고는 철벽방어를 하는 탓에 무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뭐해'라고 적은 종이쪽지를 슬쩍 건네자 펴보고는 종이를 뒤집어서 적어내렸다.
사각거리는 연필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게 침울했던 기분이 서서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중 고등학교때나 하던 쪽지 주고받기를 대학교와서 할줄이야
전정국은 나를 유치하게 만드는 신비한 재주가 있는게 아닐까

그 작은 종이에 쓸게 얼마나 많다고 아까부터 숙여있던 고개가 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썼다 지우는 통에 너덜너덜해진 종이쪽지가 손위에 놓여졌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선배 생각이요'

 

 

 

 

잘못 쓴건가 싶어 몇번이고 들여다 보아도 정갈한 글씨체로 써져 있는 것은 선배 생각이요 였다.
정국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교수님을 쳐다보면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아니, 귀 끝이 빨개진거 보면 아무렇지 않은건 아닌가보다.

 

 

 

 

 

 

 

 

 

 

 

 

 

 

 

 

 

 

 

 

 

 

 

 

 

 

 

 

 

 

"날씨 너무 덥다"

 

 

 

 

"죽기 좋은 날씨야"

 

 

 

 

"형 아이스크림 사줘요"

 

 

 

 

"네가 사다먹어"

 

 

 

 

"와 진짜 이러기야"

 

 

 

 

 

 

 

 

종이쪽지가 원인이라면 결과는 성공적인 고백이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녀석을 끌고 나가 대뜸 예전부터 너 좋아했어 그러니까 사귀자 강요하는건 아냐 거절할꺼면 거절해 라고 속사포로 쏟아붓자

어버버 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생각해보니까 너 진짜 바보같았다"

 

 

 

 

"뭐요?"

 

 

 

 

"고백 받으니까 당황해서는"

 

 

 

 

"그때 얘기 안하기로 했잖아요"

 

 

 

 

"귀여워서"

 

 

 

 

"닥쳐요"

 

 

 

 

"애인한테 닥쳐요가 뭐야 임마"

 

 

 

 

"애인한테 임마가 뭐에요 임마가"

 

 

 

 

 

 

 

 

투닥거리더니 더운 날씨 탓인지 다시 늘어진 정국이를 보며 가지고 있던 부채로 부채질을 해주던 윤기가 말을 이어나갔다.

 

 

 

 

 

 

 

 

"난 처음에 무뚝뚝하고 조용하던 네가 왜 좋아진지 몰라서"

 

 

 

 

"네"

 

 

 

 

"현실에도 큐피트가 있다면 그 새끼가 실수로 화살을 잘못 맞춘 줄 알았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어"

 

 

 

 

"그게 뭐에요"

 

 

 

 

"그냥 그랬다고 비웃냐"

 

 

 

 

 

 

 

 

뜬금없는 윤기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던 정국이가 손에 든 부채를 빼앗아 윤기한테 부채질을 해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거 실수 아니에요"

 

 

 

 

"뭐가"

 

 

 

 

"제가 매일 좋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니까 실수 아니라 정확히 맞춘거에요"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리는 정국이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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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안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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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언제쯤이면 저 별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까요?"

 

 

 

 

 

 

 

 

아주 먼 미래, 적어도 몇 십년이 흐른 후였으면 좋겠어 정국아

 

 

 

 

 

 

 

 

"언젠가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시끄러운 클락션 소리가 귓가를 울려댔다.
차들이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가 깊게 들이마신 숨과 함께 밀려들어와 저절로 기침이 새어나오게 만들었고 높디 높은 빌딩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얼른 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더욱 더 속도를 내어 달렸다.

 

 

 

 

 

 

 

 

"오늘도 오셨네요"

 

 

 

 

"네, 매번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마 조용하고 공기 맑은 서울 외곽에 위치한 큰 병원 안을 들어설때마다

목에 꽉 매여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내고 격식있게 차려입느라 단정하게 정돈한 머리도 맘에 들지 않아 몇번이고 헝클어트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자유분방하게 살기를 원했던 내가 매일 아침마다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매만지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으로 출근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사랑하는 나의 연인 때문이였다.
억지로 물려받은 이사라는 직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하루종일 사무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굴려가며 계획서를 짜내고 자잘한 계약건, 승인서 등과 같은

빽빽한 용지에 싸인을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건 일주일 중 단 이틀뿐이지만 힘들었던 5일을 잊게 만들기엔 충분한 달디 단 보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정국아 형 왔어"

 

 

 

 

"역시 형이구나"

 

 

 

 

"이번에도 발걸음 소리만 듣고 안거야?"

 

 

 

 

"네 구두소리가 들렸어요"

 

 

 

 

"역시 우리애인은 달라도 뭔가 다르네"

 

 

 

 

 

 

 

 

수많은 환자들이 생활하는 병실들을 지나쳐 복도 끝에 놓여진 호화스러운 1인용 병실문을 열고 들어서면

새하얀 병원복을 입고있는 내 연인이 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반겨준다.
정국이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는 내가 없었던 5일동안 어떻게 생활했는지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신나서 떠드는 목소리를 듣는 이 순간이 찾아올때마다

진정한 주말을 맞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고생했어요 형"

 

 

 

 

 

 

 

 

가볍게 머리를 매만져주는 손길에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머리를 부비적 대다가 고개를 들어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산책 나갈까? 요즘 날씨도 좋던데"

 

 

 

 

 

 

 

 

고개를 끄덕이는 정국이를 익숙하게 안아들고는 휠체어에 앉혔다.
더운 날씨인만큼 얇은 담요를 덮어주고 휠체어를 밀고 병실 밖을 나서는 태형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씁쓸해보였다.

 

 

 

 

 

 

 

 

 

 

 

 

 

 

 

 

 

 

 

 

 

 

 

 

 

 

 

 

 

 

정국이가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지 올해로 3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3년 전, 여느때와 다름없이 태형이와의 만남을 위해 길을 나서던 정국이를 들이받은건 부모님차를 몰래 타고 여행을 떠나려던 고등학생 무리들이였다.
무면허로 운전을 했던 탓에 미숙한 핸들조절과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난잡해진 차안이 문제였던 것이였다.
마주오는 차량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꺾었는데 때마침 신호를 기다리던 정국이를 그대로 치고

가로등에 부딪혀 안에 타고 있던 고등학생들도 큰 부상을 입었었다.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간 정국이는 의료진의 빠른 대처로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달려간 태형이는 새근거리며 잠들어있는 정국이의 모습을 보고 안도했지만

이내 자신을 불러내 뜸을 들이는 의사의 태도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저..전정국씨 보호자분"

 

 

 

 

"네 제가 보호자에요"

 

 

 

 

"정국씨가 신경손상으로 하반신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네?..."

 

 

 

 

 

 

 

 

하반신 마비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저렇게 만든 새끼들 어딨냐면서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는 탓에 간호사와 의사까지 태형이를 말리려고 애를 썼었다.
어느정도 진정을 한 태형이가 누워있는 정국이의 손을 잡으면서 차라리 자신이 이런 일을 겪었어야 했다면서 나지막이 울부짖었다.

 

 

 

 

 

 

 

 

 

 

 

 

 

 

 

 

 

 

 

 

 

 

 

 

 

 

 

 

 

 

정국이는 전국대회를 목표로 하는 유망한 육상선수였다.
태형이가 정국이한테 첫눈에 반한날도 정국이가 열심히 트랙을 달리던 날이였다.
그날도 지금처럼 무더운 날이 지속되는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이제 뭐해먹고 살지"

 

 

 

 

 

 

 

 

대기업 회장의 아들치고는 후줄근한 옷을 걸쳐입고는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에 물고 먹고 살 걱정을 하는 태형이 앞으로

단체로 훈련을 나온 것인지 맞춰입은 체육복을 입고 달려가는 무리들이 지나갔다.

이 더운 날씨에 어떻게 저렇게 뛰어

자신이 뛰는 것도 아닌데 질색한 표정을 하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쳐다보던 태형이 한순간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고 콧대를 따라 흐르던 땀방울이 턱선을 지나 목까지 흘러내리는 모습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자치고는 큰 눈과 예쁘장한 얼굴이 무리들이 지나간 후에도 한참이나 태형을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멀어져가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쁘다 중얼거리고는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같은 시간대에 그 자리에 나와 정국이의 뛰는 모습을 구경했다.
처음에는 마주치기만 했던 것이 서로 고개 숙여 가벼운 인사도 하고 나중에는 번호도 교환하고 그렇게 순조롭게 연애라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종종 태형이와 얘기를 나눌때면 들뜬 얼굴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들려주던 정국이였다.

 

 

 

 

 

 

 

 

"저는 나중에 세계대회도 노려볼꺼에요, 달리는게 너무 좋아요"

 

 

 

 

"달리다보면 옆구리도 아프고 힘들지 않아?"

 

 

 

 

"그 느낌이 좋아요 숨이 차서 옆구리가 아프고 땀을 비 오듯 쏟고나면 아, 내가 살아있구나 하고 느껴요"

 

 

 

 

 

 

 

 

그런 자신의 연인이 하반신 마비라니 믿고 싶지도 믿을 수도 없는 꿈 같은 이야기였다.

 

 

 

 

 

 

 

 

 

 

 

 

 

 

 

 

 

 

 

 

 

 

 

 

 

 

 

 

 

 

깨어난 정국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형 저 진짜 죽는줄 알았어요 차가 막 달려오는데 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태형이 모습에 반쯤 몸을 일으켜 인사를 나누고는 당시 상황에 대해 얘기를 하던 정국이가

평소와 다르게 어두운 낯을 띄고 있는 태형이의 얼굴에 의아함을 느꼈다.

 

 

 

 

 

 

 

 

"목마르다 저 물 좀 마시고 올게요"

 

 

 

 

"아니! 정국아 내가 줄...게"

 

 

 

 

 

 

 

 

태형이가 말릴새도 없이 이불을 걷어내고는 움직이려던 정국이가 들리지 않는 하반신에 힘껏 힘을 주었지만 미동도 없이 가만히 놓여져 있는 두 다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형이와 제 다리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형 이거 왜 이래요? 이상하다 왜이래"

 

 

 

 

"..."

 

 

 

 

"여기 뭐 올려놨...아니, 마취한거에요? 왜 안움직이지"

 

 

 

 

"..."

 

 

 

 

"형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제발요 네? 태형이형"

 

 

 

 

 

 

 

 

애써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밝게 말하던 정국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태형이를 보자

울컥하고 올라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형 저 다리 못쓰는거에요? 그런거에요?"

 

 

 

 

"정국아..."

 

 

 

 

 

 

 

 

태형이의 부름도 소용없는지 혼자서 중얼거리던 정국이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면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런 정국이 모습에 가슴이 아파오는 태형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우는 정국이를 끌어안아 다독이는 것 밖에는 없었다.

 

 

 

 

 

 

 

 

"형..저 이제 어떻게 살아요"

 

 

 

 

"나 있잖아 정국아 제발"

 

 

 

 

 

 

 

 

이제 자신이 좋아하던 달리기도 세계대회에 나가겠다는 꿈도 모든게 산산히 부서진 정국이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연인 태형뿐이였다.

 

 

 

 

 

 

 

 

 

 

 

 

 

 

 

 

 

 

 

 

 

 

 

 

 

 

 

 

 

 

"정국이 지금 어디있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급하게 달려온 태형이가 안내데스크에 묻자 병실안에 있다는 간호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빠르게 병실로 달려가 문을 열어젖혔다.
새하얀 침대에 누워서 형 왔어요?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정국이한테로 다가가 두 어깨를 잡아 시선을 맞췄다.

 

 

 

 

 

 

 

 

"정국아 너"

 

 

 

 

"응 왜 불러요"

 

 

 

 

 

 

 

 

더 뭐라고 말을 해야되는데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에 깊은 한숨만 내뱉고는 시선을 내리는 태형이였다.
손목에 감겨진 하얀붕대를 보자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실에 누워있던 그 날이 생각나 가슴이 아려왔다.
몇달간은 병원에서 지내야한다는 의사의 말에 앞으로 내야할 병원비와 여러가지 필요한 돈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사자리에 앉은 이상

회사가 굴러갈 수 있도록 일을 해야했기에 정국이를 방치해둔 제 잘못이 컸다.
열심히 업무를 하는 도중에 걸려온 전화를 통해 정국이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일이고 뭐고 달려와 상태를 확인해보니 그런 생각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인 정국이를 마주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저 작은 머리로 몇번이나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내왔을까

이 모든 원흉이 자신인 것만 같아 정국이를 끌어안고 몇번이고 속삭였다.

 

 

 

 

 

 

 

 

"정국아 미안해 형이 미안해"

 

 

 

 

"왜이래요 낯간지럽게"

 

 

 

 

 

 

 

 

밀어내려는 손을 마주잡고는 한참을 그렇게 정국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그 날 이후로 병실안에 자살시도를 할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치웠다.
날카로운 것들 위주로 정국이가 생활하면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만큼의 물건들만을 남겨놓고

하루종일 무슨 일은 없는지 감시할 수 있는 간병인도 붙여줬다.
평일은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주말은 무슨일이 있어도 다 미루고 정국이를 만나러 왔다.
병실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넓은 병실이라지만 좁은 침대에 둘이 부대끼며 누워 작게 나 있는 창문 밖으로 별이 수놓아진 하늘을 보며 잠에 들었다.

 

 

 

 

 

 

 

 

"오늘 별 진짜 많이 떴다"

 

 

 

 

"예쁘네 우리 정국이보단 못하지만"

 

 

 

 

"아 형 그런 소리 할때마다 토나와요"

 

 

 

 

"뭐? 토할 정도야?"

 

 

 

 

 

 

 

 

키득거리면서 장난을 치다가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별을 올려다보고 있는 정국이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작게 속삭이듯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언제쯤이면 저 별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우주로 가거나 하면 볼 수 있을까"

 

 

 

 

"그러면 로켓이라도 타야겠네"

 

 

 

 

"꿈에서도 갈 수 있어요"

 

 

 

 

"그러면 얼른 자자"

 

 

 

 

"그럴까요"

 

 

 

 

 

 

 

 

눈을 맞추며 웃는 정국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미 네 자체가 나에게는 세상이고 우주야
빛나는 별들을 가득담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을때면 수많은 별들과 함께 우주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기분이 들어
너는 네 눈이 우주를 담고 있다는걸 알까

눈을 감는 정국이를 토닥여주면서 태형이는 생각했다.

 

 

 

 

 

 

 

 

 

 

 

 

 

 

 

 

 

 

 

 

 

 

 

 

 

 

 

 

 

 

또 다시 행복한 토요일이 돌아왔다.
오늘은 업무량이 적어 생각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면서 안쪽에 고히 모셔두었던 꽃다발을 꺼내들었다.
요즘 들어 부쩍 우주 얘기나 별 얘기를 자주하는 정국이였기에 직접 별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별을 닮은 꽃들을 모아서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기분좋은 꽃 향기를 맡으면서 병원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요란하게 휴대폰이 울려댔다.

 

 

 

 

 

 

 

 

"여보세요"

 

 

 

 

"태형씨! 지금...정국씨가!"

 

 

 

 

 

 

 

 

제대로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응급실로 뛰어들어간 태형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정국이를 찾아해맸다.
저멀리서 모여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보이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힘겹게 발을 뗐지만 몇번이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혔고

들고있던 꽃다발은 이미 바닥을 나뒹굴고 짓밟히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차오르는 눈물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침실에 누워있는 사람이 정국이라는걸 확인하자 축 늘어진 손을 잡고 오열하는 태형이였다.

 

 

 

 

 

 

 

 

"정국아!..제발 눈 좀 떠봐 응? 형 왔잖아"

 

 

 

 

 

 

 

 

지혈을 위해 감아놓았던 붕대와 솜들이 이미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정국이의 볼을 감싸고 몇번이고 입을 맞추어보지만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차가운 감촉만이 느껴졌다.
미친 사람처럼 구는 태형이를 떼어낸 간호사가 정국이 얼굴위로 흰 천을 덮어냈다.

 

 

 

 

 

 

 

 

"*월 **일 **시 **분..."

 

 

 

 

 

 

 

 

그렇게 빛나던 나의 우주는 사라졌다.
감은 두 눈안에 자리잡은 우주를, 빛나는 별들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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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형제

 

 

 

 

W.닻별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는게 느껴지는데 아닌 척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우스웠다.
집에서도 지겹게 보는데 학교에서도 저러고 싶을까
꼭 선물 받은 인형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손에 쥐고 꼭 놓지 않으려고 발악하는게 아버지를 빼다박아서 신물이 났다.
그런 녀석에게 적당히 맞춰주는게 내가 이 더러운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였다.

 

 

 

 

 

 

 

 

"전정국"

 

 

 

 

"왜"

 

 

 

 

"내 필기 다했냐"

 

 

 

 

 

 

 

 

굳이 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나란히 놓여진 공책 중 하나를 집어들어 건넸다.
유지하기 짝이없는 공책이 퍽이나 잘 어울렸다.

 

 

 

 

 

 

 

 

"오 꼼꼼해 역시"

 

 

 

 

"오늘 몇시에 집에가"

 

 

 

 

"뭐야 이제 나한테 관심이 좀 생겼어?"

 

 

 

 

 

 

 

 

해맑게 웃는 모습이 자기 딴에는 멋있다고 생각하는건지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껄끄러운 나에게는 그저 보고싶지 않은 얼굴일뿐이였다.

 

 

 

 

 

 

 

 

"대답이나 해"

 

 

 

 

"10시전에는 들어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뭐가 그리 불만인지 찡그려진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었다.
7살때부터 지금까지 김태형과 한 집에 살고 있는 내가 아직까지도 적응하지 못하는것 중에 하나가 녀석의 이중성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보같은 웃음을 흘렸던 사람이 맞나 싶을정도로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고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정국아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랫도리 간수 못하고 이리저리 박고 다니는 아버지 덕분에 우리집에서 떵떵거리면서 사는거잖아 너"

 

 

 

 

 

 

 

 

남들이 보기에는 가볍게 어깨동무를 한 우애깊은 장면이였겠지만 얹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어깨가 아려왔다.
직접 얘기해주지 않아도 알고있다.
더러운 피를 이어받게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판 얼굴도 본 적 없었던 아버지라는 사람 손에 끌려가다시피 도착한 곳이

지금 내가 사는 곳이자 김태형의 집이였다.
드라마 설정에서나 볼 법한 이복형제 그게 우리 둘이였다.
흰봉투를 받아들자마자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졌고 첫 날 집안에 발을 들였을때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뺨을 때렸던 김태형 또한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끓어오르던 분노를 참느라 그날 밤은 그렇게 밤새 숨죽여서 울음을 터트렸었다.
여전히 나를 더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다가도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에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처럼 다리라도 벌리던가 도도하게 굴고 난리야"

 

 

 

 

 

 

 

 

엄마 얘기만 나오면 무언가가 걸린듯이 명치가 답답해졌다.
그냥 지금 당장이라도 녀석에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어차피 뒷상황은 뻔하기에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김태형이 저러는거 한두번도 아니고

 

 

 

 

 

 

 

 

"아무튼 이따 밤에 보자"

 

 

 

 

 

 

 

 

밤에 보자는 말이 정말 얼굴만 보는 일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리 좀 더 들어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리는 녀석의 말이 들려왔지만 가뜩이나 힘겹게 지탱하고 있던 몸이 말을 들을리 없었다.
육두문자라도 내뱉고 싶은데 지금 입을 떼면 계집애처럼 소리를 지를 것 같아 안그래도 꽉 깨무는 통에 얼얼한 입안에 더욱 더 힘을 줬다.
시간이 꽤 흘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이 행위 자체였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상대랑 무슨 재미로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것일까
언제부터 이런 짓을 했는지조차 흐릿할만큼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일방적인 폭력과 다름없는 이 행위가 녀석에게 무엇을 얻게 해주는지 알 수 없었다.
지배한다는 정복감을 갖기에는 이 악물고 버티는게 대부분이였고 반항만 하지 않을뿐 녀석과 같이 적극적으로 임한적도 없었다.

 

 

 

 

 

 

 

 

"전정국 딴생각 하지마"

 

 

 

 

 

 

 

 

아까보다 더 깊게 파고드는 녀석의 것에 고개를 묻으며 이불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저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뿐이였다.
가끔 녀석을 올려다볼 수 있는 자세가 되면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 땀범벅이 된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져 있었다.
매번 할 때마다 아픈건 나인데 자신이 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는걸 녀석을 알까
처음엔 호기심 두번째는 만족감 지금은 어떤 감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씨발"

 

 

 

 

"담배 피지마 냄새나"

 

 

 

 

"전정국 많이컸다 그런소리도 하고"

 

 

 

 

 

 

 

 

늘 관계 후에는 담배를 피면서 뭐가 그리 맘에 들지 않는건지 욕을 뱉어댔다.
저녀석도 자신이 왜 나와 이러고 있는건지 알 수 없는건가
온몸이 아프고 매번 할때마다 이물감도 느껴지는게 속은 뒤집어질 것 같고 어머니도 저녀석 아버지랑 이런짓을 해서 나를 낳았겠지
울렁거림이 더 심해지자 참을 수 없는 토기가 밀려와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도착하는것까진 좋았는데 아픈허리 때문인지 거의 미끄러지다싶이 변기에 머리를 쳐박았다.
먹은것도 없는데 몇번이나 올라오는 위액을 다 토해내자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게 느껴졌다.

 

 

 

 

 

 

 

 

"너 왜그래 어디 아파?"

 

 

 

 

 

 

 

 

놀랐는지 커다래진 눈을 하고 내려다보는 김태형 표정이 어지간히 웃겼는지 작게 실소가 터졌다.

 

 

 

 

 

 

 

 

"더럽다"

 

 

 

 

"뭐가"

 

 

 

 

"너나 나나 내 어머니나 니네 아버지나"

 

 

 

 

 

 

 

 

평소같으면 화를 내면서 발악을 했을 김태형이 조용하다.
관계 시에 내비춰졌던 묘한 표정이 다시끔 얼굴 위로 떠오르더니 금새 사라졌다.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떼다 다시 다무는 녀석을 가만히 올려다보자 한참 눈을 맞추다 이내 고개를 돌려 망설임없이 방을 나섰다.

 

 

 

 

 

 

 

 

 

 

 

 

 

 

 

 

 

 

 

 

 

 

 

 

 

 

 

 

 

 

 

"네가 김태형이 그렇게 챙긴다는 애냐"

 

 

 

 

 

 

 

 

이래서 내가 김태형이랑 다른 학교를 가겠다고 몇번이나 말씀드렸던건데

태형이를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굳이 같은 학교로 넣어버린 새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2년 내내 조용히 학교를 다닌것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될 정도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녀석이였고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던 내 계획을 틀어지게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김태형이랑 아무사이도 아닌데"

 

 

 

 

"웃기시네 매일 김태형이 말걸고 친하게 지내는것 같더만"

 

 

 

 

 

 

 

 

이녀석들은 김태형이랑 비슷한 부류인 것 같다.
몇번을 말해도 못알아쳐먹는다.
도대체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망상이 얼마나 크면 당사자가 얘기하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듣고 저러는걸까

 

 

 

 

 

 

 

 

"아니니까 좀 비켜"

 

 

 

 

 

 

 

 

가뜩이나 어제 무리했던 탓인지 몸도 안좋고 으슬으슬 추운게 몸살이라도 걸린것 같았다.
기분좋게 밥도 먹고 남은 점심시간을 어떻게 여유롭게 보낼까 생각중이였는데 이런 외진곳으로 알지도 못하는 무리들에게 끌려올 줄은 몰랐다.

 

 

 

 

 

 

 

 

"김태형이랑 사귄다는 소문도 있고 깔이라던데?"

 

 

 

 

"하긴 좀 반반하게 생겼다"

 

 

 

 

"남자랑 하면 좋냐?"

 

 

 

 

"내가 어떻게 알아 미친놈아"

 

 

 

 

 

 

 

 

면전에 대고 저딴 말을 들으니까 점점 참을성이 바닥을 치고 있었고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저속한 언어를 써가면서 히히덕 대는 녀석들을 무시하고 걸음을 떼려는데 한 녀석이 팔을 뻗어 머리채를 쥐어잡았다.

 

 

 

 

 

 

 

 

"아 시발"

 

 

 

 

"와 욕도 하네? 갑자기 막 불타오른다"

 

 

 

 

"김태형한테 대주고 다닐꺼면 우리한테도 대줘"

 

 

 

 

 

 

 

 

김태형이랑 그런 짓을 하는건 맞지만 그건 원해서 하는 일도 아니고 어쩌다 그런 소문이 퍼지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르겠는 상황에 기분만 더 더러워졌다.
말하고 다니는건 아니겠지 그런거라면 얹혀사는 입장이건 뭐건 죽도록 패줘야겠단 생각을 곱씹고 있을때 벽으로 거칠게 몸이 밀쳐졌다.

 

 

 

 

 

 

 

 

"오빠가 예뻐해줄테니까 걱정마"

 

 

 

 

"꺼져 미친놈아 얼굴도 좆같이 생겨가지고"

 

 

 

 

 

 

 

 

아까 잡혔던 머리부분이 아려오고 벽으로 밀쳐지면서 어깨를 부딪힌 탓에 식은땀이 흐르는게 느껴졌다.
거기다 상대는 여려명인 탓에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몇 대 맞으면 입 좀 다물겠지"

 

 

 

 

 

 

 

 

그 말을 끝으로 몇명이 정국을 향해 달려들었고 어설프지만 꽤 힘이 들어간 주먹을 날렸다.
차라리 김태형한테 쳐맞는게 더 낫겠다.
몇 번 맞으면 끝날만한 일을 여러명이 밟고 차고 난리도 아니였다.
터진 입술에 피딱지가 앉은지 오래였고 여름이라 새하얀 하복에는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주저앉은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교복 단추를 풀어오는 손길에 입안에 고인 피를 녀석의 얼굴에 뱉어냈다.

 

 

 

 

 

 

 

 

"아 시발!"

 

 

 

 

"이렇게 쳐맞고도 정신을 못차렸네 야 다들 잡아"

 

 

 

 

 

 

 

 

각각 팔이며 다리며 잡아오는 손길이 소름끼치다못해 더러웠다.
김태형이나 이녀석들이나 같은 남자한테 발정하는것부터가 정상이 아닌거고 이렇게 때려눕혀서라도 하고 싶을까
무엇보다 김태형이랑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하는것 자체가 억울하다 못해 미칠지경이였다.

 

 

 

 

 

 

 

 

"재미좋다 너네들 뭐하냐"

 

 

 

 

"어떤 새끼가 지랄이ㅇ...김태형?"

 

 

 

 

 

 

 

 

거의 체념한 상태로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중학교때 옆반 녀석과 시비가 붙어 주먹이 오갔을때 터진 입술을 보고 지었던 표정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눈앞에 서 있는 김태형이였다.
험악하게 굳어진 얼굴로 정국의 바지버클을 풀어내던 녀석을 힘껏 차버리더니 팔다리를 잡고 있던 나머지 녀석들도 가볍게 걷어차버렸고

그럼에도 성이 안풀리는건지 몇번이나 밟고 짓이기고 보는 내가 다 아플정도록 미친듯이 녀석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김태형 그만해"

 

 

 

 

"..."

 

 

 

 

"그만하라고 그러다가 죽겠어"

 

 

 

 

"죽으라고 그러지 뭐"

 

 

 

 

 

 

 

 

아이처럼 삐죽거리며 대답을 하고는 기절한 녀석의 얼굴에 신발자국을 남기며 즈려밟더니 천천히 정국에게로 걸어갔다.
벌어진 옷가지를 추스리려는 정국의 손길을 저지하고는 자신이 직접 단추를 잠궈준 후에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는 태형이였다.

 

 

 

 

 

 

 

 

"진짜 죽여버릴까"

 

 

 

 

"너도 똑같아"

 

 

 

 

"뭐가"

 

 

 

 

"저새끼들이 하려던 짓 너도 자주 하잖아"

 

 

 

 

"아니 그건...시발"

 

 

 

 

 

 

 

 

맞는말이라서 뭐라 더 말은 못하고 인상을 구기던 녀석이 옆에 붙어앉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도 보기 싫은 녀석이었는데 아까 몹쓸짓거리를 당하는 내내 김태형 생각만 했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 같이 한숨을 내쉬는 정국이였다.
얼른 집에가서 더러운 교복도 빨고 다친곳도 치료하고 푹신한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조용히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이 시간을 깨고 싶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왜 그렇게 서로를 싫어하게 된 건지 왜 김태형과 내가 관계를 맺고 싶어하게 된 건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지만

그 이유가 서로의 존재 자체만은 아니라는 것 하나는 녀석도 나도 알 수 있는 사실이였다.
어머니가 다르고 아버지가 같은 이러한 관계 속에 놓이지만 않았어도 나름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야 전정국"

 

 

 

 

"..."

 

 

 

 

"전정국"

 

 

 

 

"왜"

 

 

 

 

"정국아"

 

 

 

 

"왜 자꾸 부르는데"

 

 

 

 

"좋아해, 아까 그 새끼 진짜 죽일뻔 했어"

 

 

 

 

 

 

 

 

이제 좀 생각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드디어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녀석이 나를 소유하고 싶어하고 빼앗길까봐 불안해 했던 이유에 관한 해답을 녀석에게 듣는 순간이였다.
모진 말을 써가면서까지 나한테 관심을 받고 싶어했던 것을 보니 정말 생각까지 어린놈이였다.
더불어 김태형이 굳이 나와 관계를 맺는 것도 내가 완강히 거절하지 않았던 것도 확실해졌다.
더러운게 아니라 좋아하는 거였네

 

 

 

 

 

 

 

 

"어차피 아버지만 같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첫 날 내 뺨을 내리쳤던 이유가 단순히 아버지를 빼앗겼다는 사실에서 나온 행동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했다.
김태형에게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외부인과도 같았으며

자신이 누리던 모든것들을 억지로 나눠줘야할 대상이 되었으니 그렇게 죽도록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것이였다.
아마 김태형에게 미움을 받으면서 나도 녀석을 싫어하게 된 것 같았다.
싫어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즉 애증을 느끼던 녀석이 선택한건 낯간지럽게도 사랑이였다.

 

 

 

 

 

 

 

 

"난 너 좋다고 안했는데"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거지 자 일어나 집에 가자"

 

 

 

 

 

 

 

 

막무가내인건 여전한건지 내밀어 오는 손을 앞에두고 망설이던 정국이 마지못해 마주잡고 몸을 일으켰다.
역시 김태형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관계로든 녀석과는 마주쳤을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며 한발치 앞서 걷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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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자

 

 

 

 

W.닻별

 

 

 

 

 

 

 

 

 

 

 

 

 

 

 

 

 

 

 

 

 

 

 

 

 

 

 

 

 

언제 말하지
속에서는 이미 몇번이고 말을 건네고 그 후에 상황까지 다 그려놨는데 쉽사리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는 말에 눈치만 살피고 있는 정국이였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윤기의 모습이 자신의 앞을 스쳐지나가 복도 끝을 향해 사라질 때까지 결국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난 정국이

눈앞에 놓인 아무 잘못도 없는 자판기를 걷어찼다.
꽤 힘을 주고 찬 탓인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음료수가 뽑아져 나왔다.
평소라면 왠 떡인가 싶어 바로 집어들어 마셨겠지만 공짜 음료수만으로는 지금의 자신을 위로하기에는 역부족이였다.
알고 지낸지 1년 짝사랑한지 2년 이제 곧 졸업인 윤기의 얼굴을 얼마나 더 오래 볼 수 있을지 가늠할 수도 없을만큼 막막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에도 실패했어?"

 

 

 

 

"조용히 해라 죽겠으니까"

 

 

 

 

 

 

 

 

같은과 동기 녀석의 말을 듣자마자 아침에 겪었던 일이 되살아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 알고지낸만큼 내 표정만 봐도 뭐가 어떤지 척 하면 아는 녀석의 태도가 오늘만큼은 달갑지 않았다.

 

 

 

 

 

 

 

 

"너 그러다가 말도 못붙이고 평생 만나지도 못한다 실습 나가서 취직하는 경우도 많잖아"

 

 

 

 

 

 

 

 

애써 부정하고 싶었지만 백번 천번 맞는 말이였다.
같은과 같은동아리 선후배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윤기와의 접점을 수치로 표현하자면 10%? 아니 5% 도 높게 쳐줬다고 볼 수 있을만큼 서로간의 교류가 없었다.
평소 친구녀석들에게 대담하다 패기넘치다 이런 소리를 들어온 전정국이 짝사랑 하나 때문에 3일도 아니고 3년을 끙끙 앓고 있다니

 

 

 

 

 

 

 

 

"3년동안 뭐했냐"

 

 

 

 

"조용히해"

 

 

 

 

 

 

 

 

유일하게 자신의 속사정을 알고 있는 녀석인데 이해해주지는 못할망정 속만 박박 긁어대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엎드린 채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는데 툭 하고 어깨를 건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만해 놀 기분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말했는데도 계속 건드리는 손에 고개를 쳐들고 언성을 높였다.

 

 

 

 

 

 

 

 

"그만하라고 했잖ㅇ..."

 

 

 

 

 

 

 

 

당연히 옆에 앉아있던 녀석이 장난을 친거라 생각했는데 눈앞에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인 윤기의 얼굴이 자리잡고 있었다.
너무 좋아해서 환각까지 보이나싶어 뺨을 치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는 정국의 모습을 지켜보던 윤기가 실소를 터트리더니

손을 잡아끌어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떨어트린것 같아서"

 

 

 

 

"아..."

 

 

 

 

 

 

 

 

그제서야 자신의 손에 놓인 학생증을 발견하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다음부턴 잘 챙기고 다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정국이를 쳐다보던 윤기가 이내 발걸음을 돌려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살아있냐"

 

 

 

 

"아니 딱 죽기직전이야"

 

 

 

 

 

 

 

 

멍청하게 학생증을 흘린 자신에게 감사해야될지 그걸 또 찾으러 와준 윤기한테 감사해야할지

뭐가 됐던 아까의 안좋던 일들은 싹 다 잊어버린듯이 기분이 나아졌다.
입학식 때 이후로 두번째 하는 대화였다.
입학식 날 길을 잃어버린 자신에게 툴툴 거리기는 했지만 직접 장소까지 데려다 준 무심한 듯 다정한 모습을 보고 좋아하게 됐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와 별반 다를거 없이 주고받은건 몇마디뿐이였지만 3년동안 마음고생 했던 자신에게 윤기의 시선 말 무엇하나 간절하지 않은게 없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밥 한번 살게요라는 말을 덧붙여서 같이 밥 먹을 기회나 만들걸 이제와서 이런 좋은 생각을 떠올려봤자

이미 윤기는 사라진지 오래였고 답답함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목이 마를때마다 매점보다는 자판기를 이용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자신만의 논리로 늘 같은 자리에 놓여있는 자판기로 가 습관적으로 음료수를 뽑았다.
이제 공짜음료수를 먹는 방법을 알았으니까 돈 좀 굳겠다싶은 마음으로 힘껏 자판기를 걷어찼다.

 

 

 

 

 

 

 

 

"아씨..."

 

 

 

 

 

 

 

 

아침에는 운이 좋았던건지 발끝만 아려오고 정작 음료수는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달칵하고 동전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구부렸던 몸을 피자마자 볼 옆에 시원하다못해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음료수 사먹을 돈도 없냐"

 

 

 

 

 

 

 

 

하루에 두번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친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무때나 툭 튀어나와서 놀래키는건 둘째치고 햇살이 눈이 부신 탓인지 찡그린 미간까지도 조용히 뛰고 있던 심박수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아니 아까는 나왔는데 이게 막 안되더라구요"

 

 

 

 

"그냥 이거 마셔"

 

 

 

 

 

 

 

 

볼에 가져다댄게 저거였구나
두손으로 받아든 음료수는 자기가 매일 뽑아먹는것과 같은거였다.

 

 

 

 

 

 

 

 

"선배도 이거 좋아해요?"

 

 

 

 

"그게 제일 맛있으니까"

 

 

 

 

"역시 이게 짱이죠 진짜 맛있어요 처음에 먹자마자 와 이런맛도 있구나 하고 신세계를 발견한 줄 알았..다니까요"

 

 

 

 

 

 

 

 

신나서 혼자 떠들다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던 눈동자가 이내 바닥을 향했다.

 

 

 

 

 

 

 

 

"매일 이거 사먹는것 같던데 많이 좋아하나봐"

 

 

 

 

"그럼요 맛있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올 정도로? 1년동안 계속 그랬던것 같은데"

 

 

 

 

"진짜 일 없으면 매일 여기 올정도라서요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1년동안이라는 말이 나오자 정국이 놀란표정으로 윤기를 향해 물었고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정국의 시선을 피하는 윤기였다.
한동안의 정적을 깨고 긴 한숨을 내쉬던 윤기가 낮은 목소리로 잠깐 얘기 좀 하자며 그늘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늘진 벤치로 장소를 옮겨도 아까와 같은 정적이 계속 되자 괜히 긴장이 되는지

윤기가 건네 준 음료수만 홀짝이고 있는 정국이를 빤히 쳐다보다 정면을 응시하며 말을 꺼냈다.

 

 

 

 

 

 

 

 

"좀 뜬금없지만 실습 나간 곳에서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하더라"

 

 

 

 

"아..그래요? 축하해요"

 

 

 

 

 

 

 

 

말이 씨가 된다는 옛날 속담처럼 되어버린 상황에 씁쓸하게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울적해지는 마음에 어깨가 눈에 띄게 축 쳐졌다.

 

 

 

 

 

 

 

 

"아마 다음주부터는 학교 안나오고 일하러 갈 것 같아"

 

 

 

 

 

 

 

 

굳이 따로 얘기해서 전할만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는 정국이였다.
혹시 자신을 좋아한다는걸 알아채서 그만 좋아하라고 선이라도 긋는게 아닐까
행여나 그런거라면 이런식으로 돌려말할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얘기를 듣는게 상처가 덜하겠지만

어찌되었든 시작도 못해본 첫사랑이 끝맺음을 맺는다는 슬픈 사실은 변함없는 것이였다.

 

 

 

 

 

 

 

 

"그래서 말인데 마지막으로 하는 얘기니까 들어"

 

 

 

 

"...네?"

 

 

 

 

 

 

 

 

사뭇 진지한 표정을 띈 윤기의 얼굴을 마주하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왜인지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말을 꺼내기가 힘든건지 뜸을 들이는 윤기에 의해 실컷 윤기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던 정국이 헛기침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다.

 

 

 

 

 

 

 

 

"번호 좀 알려줘 연락하고 싶어"

 

 

 

 

"...? 뭐라구요?"

 

 

 

 

"싫으면 싫다고 해"

 

 

 

 

"아니 제 번호 알려달라고 한거죠?"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웃으면 안되는데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에 재빨리 윤기 손에 들린 폰을 가져가 번호를 찍고는

자신의 번호로 전화를 해 윤기의 번호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고 착실히 해냈다.
그동안의 짝사랑을 가엽게라도 여긴건지 오늘따라 운수가 좋은게 몽글몽글한 느낌에 가슴이 간질거렸다.

 

 

 

 

 

 

 

 

"이제 강의 시작하니까 가봐야겠다"

 

 

 

 

"아 들어가보세요 음료수 잘 먹었어요"

 

 

 

 

"아 그리고 오해할까봐 말해주는데"

 

 

 

 

"네?"

 

 

 

 

"이거 너한테 작업거는거야"

 

 

 

 

 

 

 

 

몸을 일으켜 물끄러미 정국을 바라보고 있던 윤기가 작게 속삭이고 폰을 가리키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빠르게 걸어가버렸다.
들고있던 빈캔을 떨어트린 정국이 얼굴을 감싸쥐고 고개를 숙였다.

 

 

 

 

 

 

 

 

"미쳤어 진짜 미친거야"

 

 

 

 

 

 

 

 

윤기가 뱉은 말을 곱씹어보자 다시 붉어진 얼굴에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정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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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

 

 

 

 

 

 

 

 

 

W.닻별

 

 

 

 

 

 

 

 

 

 

 

 

 

 

 

 

 

 

 

 

 

 

 

 

 

 

 

 

 

 

요즘 들어 밖을 나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같은 기숙사를 배정 받은지 한 달 남짓 되었을까
비슷한 나잇대라 그런지 쉽게 친해졌고 지내다보니 사소한 것들이 잘 맞아 거의 불알친구급으로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전정국 어디가"

 

 

 

 

"안자고 있었어요?"

 

 

 

 

 

 

 

 

4인실 방을 둘이서 지내고 있는 상황이라 넉넉한 안이였지만 둘 다 잠이 든 조용한 시간에는 작은 발소리 하나조차도 예민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깊게 잠이 들지않는 이상 잠귀가 얇은 태형은 정국이가 이불을 들춰내는 소리만으로도 잠에서 깨어났다.
깰 때마다 세어본것만 해도 여러번이였고 매번 이 야심한 시각에 밖을 나서는 이유가 궁금해서 자는척을 하는것에도 한계를 느꼈다.

 

 

 

 

 

 

 

 

"내가 초반에 예민하다고 말했잖아 이 새벽에 어딜 그렇게 가?"

 

 

 

 

"음...그냥 친구가 자꾸 보자고 해서요"

 

 

 

 

"이런 늦은 시간에?"

 

 

 

 

 

 

 

 

곤란한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아닌 척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게 분명했다.
거짓말도 잘 못하면서

 

 

 

 

 

 

 

 

"정국아 사실대로 말해"

 

 

 

 

 

 

 

 

해맑게 웃고는 있지만 평소에도 솔직해서 탈이였던 정국이가 다른사람도 아닌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긴다는것 자체가

기분이 상하는 일인건 어쩔 수 없는것이였다.

 

 

 

 

 

 

 

 

"형이 굳이 알 필요 없잖아요 저도 제 사생활이 있어요"

 

 

 

 

"뭐?"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본 태형을 외면하고는 밖을 나서는 정국이였다.
평소에는 먼저 형 형 거리면서 잘 따르던 녀석이였는데 그저 이 새벽에 어디를 나가냐라는 질문 하나 했다고 저런 태도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잠은 다 달아난지 오래였고 기분도 가라앉았으니 아침이 밝을 때까지 무엇을 해야할지 난감해진 태형이였다.
결국 해가 뜰대까지 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서서히 몰려오는 졸음에

잠깐 눈을 부치려고 한것이 강의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한낮이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별수없네 자체휴강 해야지"

 

 

 

 

 

 

 

 

이왕 늦잠잔거 아예 하루 놀 생각으로 가벼운 소지품을 챙기던 태형이 옆 침대로 눈을 돌렸다.
정국이 나갈대와 똑같이 구겨져있는 이불과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침대가 새벽에 나간 이후로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았다는걸 알려주고 있었다.
어제 나눴던 대화가 다시 떠올라 기분이 팍 상해버린 태형이 괜히 베개를 던져버리고는 세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동기들은 다들 수업을 듣고 있을테니 혼자서 자유를 만끽한다는 생각에 새삼스레 설레여 시내를 이리저리 돌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학교와 기숙사를 오가느라 뭘 사먹고 입고 하는걸 한동안 못했던 탓인지 물만난 고기처럼 맘껏 사고 먹고 돌아다니는 태형이였다.
금방 어둑해진 주변에 이제 들어가야겠다싶어 발걸음을 돌리던 태형의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야 전정국!"

 

 

 

 

 

 

 

 

유흥가가 몰려있는 맞은편 골목길에서 무리에게 둘러쌓인 정국이가 눈에 띄였다.
딱봐도 좋은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 상황에 신호도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도로를 건너갔다.

 

 

 

 

 

 

 

 

"이야 친구야? 예쁘게 생겼네"

 

 

 

 

 

 

 

 

지금쯤 기숙사에서 자고 있어야할 태형이 눈앞에 보이자

당황해서 오지말라고 소리를 치기도전에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모습에 머리를 부여잡는 정국이였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것 같다.
자신이 본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잘도 잠을 자는 태형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일만큼 답답한 일도 없었다.
거기다 요즘들어 덥다는 이유로 윗옷을 벗고자는 경우가 빈번한데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위험한 상태로 잠을 청하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몇이나 있냐 이거다.
매번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니 김태형이랑 닮은 사람을 찾아 본능을 억누르는것 밖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하지만 대신은 대신일뿐 본인이 아니고서야 늘 부족한 무언가가 남아서 찜찜한 채로 잠에 드는 일이 많아졌다.

 

 

 

 

 

 

 

 

 

 

 

 

 

 

 

 

 

 

 

 

 

 

 

 

 

 

 

 

 

 

일이 터져버린것은 어제 새벽이였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밖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일어나 어디를 가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태형에게 형을 좋아해서 섹스하고 싶은데 못하니까 밖에 나가서 풀고오겠습니다! 라고 솔직하게 말할수도 없고 민망하기도 해서 대충 얼버무린다는게 쌀쌀맞게 대해버렸다.
아직 어제일도 제대로 풀지 못했는데 또 다른 문제에 휘말리게 만들다니 여러모로 골치가 아팠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설명해 전정국"

 

 

 

 

"아니 형 그게요"

 

 

 

 

"아니 글쎄 이 예쁜이가 우리가 놀자는데 자꾸 거절하잖아 이쪽에 오가는거 내가 요근래 자주 봤는데"

 

 

 

 

"닥쳐요 좀 저도 취향이란게 있지"

 

 

 

 

"괜히 튕기기는"

 

 

 

 

 

 

 

 

아까부터 은근슬쩍 정국의 턱을 쓰다듬는 버러지같은 녀석의 손길이 몹시 거슬렸다.
전정국 싸돌아다닐대부터 사고칠줄 알았다.

 

 

 

 

 

 

 

 

"싫다잖아 좀 꺼져"

 

 

 

 

"뭐?"

 

 

 

 

 

 

 

 

짜증나게 되물어오는것도 그렇고 턱을 만지던 손이 허리로 내려오는게 더는 못봐주겠다 싶어서 발로 배를 걷어차버렸다.
중심을 못잡고 넘어가자마자 위로 올라타 세게 주먹을 날렸다.
자고로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는 한놈만 반죽음 만들어놓으면 된다고 했다.
놀란 정국이가 태형이를 불렀지만 이미 열이 뻗친 상태라 계속 주먹만 휘둘러댔다.
방심하던 차에 한대 얻어터지기는 했지만 이미 기절해버린 상태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손을 털고 일어난 태형이 쓰라린 볼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 진짜 그동안 새벽에 이런짓 당하려고 나간거야?"

 

 

 

 

"아니에요 이새끼들이 먼저!"

 

 

 

 

"변명은 숙소가서 듣는걸로 하자"

 

 

 

 

 

 

 

 

평소와 같이 밝은 미소를 짓다가 아려오는 입술에 아야라고 작게 신음을 뱉는 태형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자 이제 얘기나 들어보자 정국아 뭐가 어떻게 된거야"

 

 

 

 

 

 

 

자신 때문에 잘생긴 얼굴에 상처가 났으니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연고를 발라주며 말을 꺼냈다.

 

 

 

 

 

 

 

 

"아니 밤마다 형이 그러니까 옷을 막 벗고 되게 조심성 없게 자잖아요"

 

 

 

 

"그거랑 네가 새벽에 나가는거랑 뭐가? 아 보기 싫으면 말을하지"

 

 

 

 

 

 

 

 

엉뚱한 소리나 하는 태형이의 모습에 상처부분을 세게 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아! 야 너 일부러"

 

 

 

 

"형이라면 좋아하는 사람이 그러고 있는데 잠이와요? 눈앞에 현실판 야동이 펼쳐진 것 같다고!"

 

 

 

 

"뭐?"

 

 

 

 

"네?"

 

 

 

 

 

 

 

 

자기가 말해놓고서는 놀라서 크게 띄여진 눈으로 태형이를 쳐다보던 정국이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돌렸다.

 

 

 

 

 

 

 

 

"제 말은 그러니까"

 

 

 

 

"그래 결론은 내가 좋다는거잖아"

 

 

 

 

"아니 제 말 좀 들어봐요"

 

 

 

 

"현실판 야동이 펼쳐질 정도로 좋다는거네 그치?"

 

 

 

 

"...네 맞아요"

 

 

 

 

 

 

 

 

변명을 해봤자 들을것 같지도 않은 태도에 체념한듯 작은 목소리로 긍정의 표시를 하는 정국이였다.
정국이가 쩔쩔매는 모습을 빤히 보던 태형이가 익살스럽게 웃음을 지어냈다.

 

 

 

 

 

 

 

 

"아 진짜 웃겨 죽겠네 버러지 새끼한테 한 대 맞으니까 알겠더라 내가 전정국을 좋아해서 밤마다 어디를 나가는지 궁금했던거고

얼굴도 내줄만큼 관심이 있나보다 싶더라"

 

 

 

 

"형 한 대 맞고 정신 이상해진거 아니죠?"

 

 

 

 

"진지하게 고백하고 있는데 무드없게 뭐하는 짓이야"

 

 

 

 

"그치만 너무 뜬금없어서"

 

 

 

 

"그래서 싫어?"

 

 

 

 

"제가 좋다고 말했잖아요"

 

 

 

 

 

 

 

 

약간 붉어진 귀끝이 귀여워 죽겠다.
서서 약을 발라주던 정국이를 잡아끌어 눕히고는 그 위로 올라탔다.

 

 

 

 

 

 

 

 

"이왕 이렇게 된거 현실판 야동 좀 찍어볼까"

 

 

 

 

"미쳤어요?"

 

 

 

 

"밤마다 나간건 괘씸하니까 혼 좀 내고"

 

 

 

 

"얼른 비켜요"

 

 

 

 

"괜찮아 여기 방음 꽤 되더라"

 

 

 

 

 

 

 

 

더 이상 들을 생각이 없다는듯 입술을 맞대며 정국의 입을 막아버리는 태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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