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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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말하지
속에서는 이미 몇번이고 말을 건네고 그 후에 상황까지 다 그려놨는데 쉽사리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는 말에 눈치만 살피고 있는 정국이였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윤기의 모습이 자신의 앞을 스쳐지나가 복도 끝을 향해 사라질 때까지 결국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난 정국이

눈앞에 놓인 아무 잘못도 없는 자판기를 걷어찼다.
꽤 힘을 주고 찬 탓인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음료수가 뽑아져 나왔다.
평소라면 왠 떡인가 싶어 바로 집어들어 마셨겠지만 공짜 음료수만으로는 지금의 자신을 위로하기에는 역부족이였다.
알고 지낸지 1년 짝사랑한지 2년 이제 곧 졸업인 윤기의 얼굴을 얼마나 더 오래 볼 수 있을지 가늠할 수도 없을만큼 막막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에도 실패했어?"

 

 

 

 

"조용히 해라 죽겠으니까"

 

 

 

 

 

 

 

 

같은과 동기 녀석의 말을 듣자마자 아침에 겪었던 일이 되살아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 알고지낸만큼 내 표정만 봐도 뭐가 어떤지 척 하면 아는 녀석의 태도가 오늘만큼은 달갑지 않았다.

 

 

 

 

 

 

 

 

"너 그러다가 말도 못붙이고 평생 만나지도 못한다 실습 나가서 취직하는 경우도 많잖아"

 

 

 

 

 

 

 

 

애써 부정하고 싶었지만 백번 천번 맞는 말이였다.
같은과 같은동아리 선후배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윤기와의 접점을 수치로 표현하자면 10%? 아니 5% 도 높게 쳐줬다고 볼 수 있을만큼 서로간의 교류가 없었다.
평소 친구녀석들에게 대담하다 패기넘치다 이런 소리를 들어온 전정국이 짝사랑 하나 때문에 3일도 아니고 3년을 끙끙 앓고 있다니

 

 

 

 

 

 

 

 

"3년동안 뭐했냐"

 

 

 

 

"조용히해"

 

 

 

 

 

 

 

 

유일하게 자신의 속사정을 알고 있는 녀석인데 이해해주지는 못할망정 속만 박박 긁어대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엎드린 채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는데 툭 하고 어깨를 건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만해 놀 기분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말했는데도 계속 건드리는 손에 고개를 쳐들고 언성을 높였다.

 

 

 

 

 

 

 

 

"그만하라고 했잖ㅇ..."

 

 

 

 

 

 

 

 

당연히 옆에 앉아있던 녀석이 장난을 친거라 생각했는데 눈앞에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인 윤기의 얼굴이 자리잡고 있었다.
너무 좋아해서 환각까지 보이나싶어 뺨을 치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는 정국의 모습을 지켜보던 윤기가 실소를 터트리더니

손을 잡아끌어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떨어트린것 같아서"

 

 

 

 

"아..."

 

 

 

 

 

 

 

 

그제서야 자신의 손에 놓인 학생증을 발견하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다음부턴 잘 챙기고 다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정국이를 쳐다보던 윤기가 이내 발걸음을 돌려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살아있냐"

 

 

 

 

"아니 딱 죽기직전이야"

 

 

 

 

 

 

 

 

멍청하게 학생증을 흘린 자신에게 감사해야될지 그걸 또 찾으러 와준 윤기한테 감사해야할지

뭐가 됐던 아까의 안좋던 일들은 싹 다 잊어버린듯이 기분이 나아졌다.
입학식 때 이후로 두번째 하는 대화였다.
입학식 날 길을 잃어버린 자신에게 툴툴 거리기는 했지만 직접 장소까지 데려다 준 무심한 듯 다정한 모습을 보고 좋아하게 됐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와 별반 다를거 없이 주고받은건 몇마디뿐이였지만 3년동안 마음고생 했던 자신에게 윤기의 시선 말 무엇하나 간절하지 않은게 없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밥 한번 살게요라는 말을 덧붙여서 같이 밥 먹을 기회나 만들걸 이제와서 이런 좋은 생각을 떠올려봤자

이미 윤기는 사라진지 오래였고 답답함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목이 마를때마다 매점보다는 자판기를 이용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자신만의 논리로 늘 같은 자리에 놓여있는 자판기로 가 습관적으로 음료수를 뽑았다.
이제 공짜음료수를 먹는 방법을 알았으니까 돈 좀 굳겠다싶은 마음으로 힘껏 자판기를 걷어찼다.

 

 

 

 

 

 

 

 

"아씨..."

 

 

 

 

 

 

 

 

아침에는 운이 좋았던건지 발끝만 아려오고 정작 음료수는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달칵하고 동전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구부렸던 몸을 피자마자 볼 옆에 시원하다못해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음료수 사먹을 돈도 없냐"

 

 

 

 

 

 

 

 

하루에 두번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친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무때나 툭 튀어나와서 놀래키는건 둘째치고 햇살이 눈이 부신 탓인지 찡그린 미간까지도 조용히 뛰고 있던 심박수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아니 아까는 나왔는데 이게 막 안되더라구요"

 

 

 

 

"그냥 이거 마셔"

 

 

 

 

 

 

 

 

볼에 가져다댄게 저거였구나
두손으로 받아든 음료수는 자기가 매일 뽑아먹는것과 같은거였다.

 

 

 

 

 

 

 

 

"선배도 이거 좋아해요?"

 

 

 

 

"그게 제일 맛있으니까"

 

 

 

 

"역시 이게 짱이죠 진짜 맛있어요 처음에 먹자마자 와 이런맛도 있구나 하고 신세계를 발견한 줄 알았..다니까요"

 

 

 

 

 

 

 

 

신나서 혼자 떠들다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던 눈동자가 이내 바닥을 향했다.

 

 

 

 

 

 

 

 

"매일 이거 사먹는것 같던데 많이 좋아하나봐"

 

 

 

 

"그럼요 맛있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올 정도로? 1년동안 계속 그랬던것 같은데"

 

 

 

 

"진짜 일 없으면 매일 여기 올정도라서요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1년동안이라는 말이 나오자 정국이 놀란표정으로 윤기를 향해 물었고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정국의 시선을 피하는 윤기였다.
한동안의 정적을 깨고 긴 한숨을 내쉬던 윤기가 낮은 목소리로 잠깐 얘기 좀 하자며 그늘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늘진 벤치로 장소를 옮겨도 아까와 같은 정적이 계속 되자 괜히 긴장이 되는지

윤기가 건네 준 음료수만 홀짝이고 있는 정국이를 빤히 쳐다보다 정면을 응시하며 말을 꺼냈다.

 

 

 

 

 

 

 

 

"좀 뜬금없지만 실습 나간 곳에서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하더라"

 

 

 

 

"아..그래요? 축하해요"

 

 

 

 

 

 

 

 

말이 씨가 된다는 옛날 속담처럼 되어버린 상황에 씁쓸하게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울적해지는 마음에 어깨가 눈에 띄게 축 쳐졌다.

 

 

 

 

 

 

 

 

"아마 다음주부터는 학교 안나오고 일하러 갈 것 같아"

 

 

 

 

 

 

 

 

굳이 따로 얘기해서 전할만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는 정국이였다.
혹시 자신을 좋아한다는걸 알아채서 그만 좋아하라고 선이라도 긋는게 아닐까
행여나 그런거라면 이런식으로 돌려말할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얘기를 듣는게 상처가 덜하겠지만

어찌되었든 시작도 못해본 첫사랑이 끝맺음을 맺는다는 슬픈 사실은 변함없는 것이였다.

 

 

 

 

 

 

 

 

"그래서 말인데 마지막으로 하는 얘기니까 들어"

 

 

 

 

"...네?"

 

 

 

 

 

 

 

 

사뭇 진지한 표정을 띈 윤기의 얼굴을 마주하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왜인지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말을 꺼내기가 힘든건지 뜸을 들이는 윤기에 의해 실컷 윤기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던 정국이 헛기침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다.

 

 

 

 

 

 

 

 

"번호 좀 알려줘 연락하고 싶어"

 

 

 

 

"...? 뭐라구요?"

 

 

 

 

"싫으면 싫다고 해"

 

 

 

 

"아니 제 번호 알려달라고 한거죠?"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웃으면 안되는데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에 재빨리 윤기 손에 들린 폰을 가져가 번호를 찍고는

자신의 번호로 전화를 해 윤기의 번호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고 착실히 해냈다.
그동안의 짝사랑을 가엽게라도 여긴건지 오늘따라 운수가 좋은게 몽글몽글한 느낌에 가슴이 간질거렸다.

 

 

 

 

 

 

 

 

"이제 강의 시작하니까 가봐야겠다"

 

 

 

 

"아 들어가보세요 음료수 잘 먹었어요"

 

 

 

 

"아 그리고 오해할까봐 말해주는데"

 

 

 

 

"네?"

 

 

 

 

"이거 너한테 작업거는거야"

 

 

 

 

 

 

 

 

몸을 일으켜 물끄러미 정국을 바라보고 있던 윤기가 작게 속삭이고 폰을 가리키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빠르게 걸어가버렸다.
들고있던 빈캔을 떨어트린 정국이 얼굴을 감싸쥐고 고개를 숙였다.

 

 

 

 

 

 

 

 

"미쳤어 진짜 미친거야"

 

 

 

 

 

 

 

 

윤기가 뱉은 말을 곱씹어보자 다시 붉어진 얼굴에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정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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