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안의 우주

 

 

 

 

W.닻별

 

 

 

 

 

 

 

 

 

 

 

 

 

 

 

 

 

 

 

 

 

 

 

 

 

 

 

 

 

"형 언제쯤이면 저 별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까요?"

 

 

 

 

 

 

 

 

아주 먼 미래, 적어도 몇 십년이 흐른 후였으면 좋겠어 정국아

 

 

 

 

 

 

 

 

"언젠가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시끄러운 클락션 소리가 귓가를 울려댔다.
차들이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가 깊게 들이마신 숨과 함께 밀려들어와 저절로 기침이 새어나오게 만들었고 높디 높은 빌딩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얼른 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더욱 더 속도를 내어 달렸다.

 

 

 

 

 

 

 

 

"오늘도 오셨네요"

 

 

 

 

"네, 매번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마 조용하고 공기 맑은 서울 외곽에 위치한 큰 병원 안을 들어설때마다

목에 꽉 매여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내고 격식있게 차려입느라 단정하게 정돈한 머리도 맘에 들지 않아 몇번이고 헝클어트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자유분방하게 살기를 원했던 내가 매일 아침마다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매만지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으로 출근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사랑하는 나의 연인 때문이였다.
억지로 물려받은 이사라는 직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하루종일 사무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굴려가며 계획서를 짜내고 자잘한 계약건, 승인서 등과 같은

빽빽한 용지에 싸인을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건 일주일 중 단 이틀뿐이지만 힘들었던 5일을 잊게 만들기엔 충분한 달디 단 보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정국아 형 왔어"

 

 

 

 

"역시 형이구나"

 

 

 

 

"이번에도 발걸음 소리만 듣고 안거야?"

 

 

 

 

"네 구두소리가 들렸어요"

 

 

 

 

"역시 우리애인은 달라도 뭔가 다르네"

 

 

 

 

 

 

 

 

수많은 환자들이 생활하는 병실들을 지나쳐 복도 끝에 놓여진 호화스러운 1인용 병실문을 열고 들어서면

새하얀 병원복을 입고있는 내 연인이 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반겨준다.
정국이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는 내가 없었던 5일동안 어떻게 생활했는지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신나서 떠드는 목소리를 듣는 이 순간이 찾아올때마다

진정한 주말을 맞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고생했어요 형"

 

 

 

 

 

 

 

 

가볍게 머리를 매만져주는 손길에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머리를 부비적 대다가 고개를 들어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산책 나갈까? 요즘 날씨도 좋던데"

 

 

 

 

 

 

 

 

고개를 끄덕이는 정국이를 익숙하게 안아들고는 휠체어에 앉혔다.
더운 날씨인만큼 얇은 담요를 덮어주고 휠체어를 밀고 병실 밖을 나서는 태형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씁쓸해보였다.

 

 

 

 

 

 

 

 

 

 

 

 

 

 

 

 

 

 

 

 

 

 

 

 

 

 

 

 

 

 

정국이가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지 올해로 3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3년 전, 여느때와 다름없이 태형이와의 만남을 위해 길을 나서던 정국이를 들이받은건 부모님차를 몰래 타고 여행을 떠나려던 고등학생 무리들이였다.
무면허로 운전을 했던 탓에 미숙한 핸들조절과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난잡해진 차안이 문제였던 것이였다.
마주오는 차량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꺾었는데 때마침 신호를 기다리던 정국이를 그대로 치고

가로등에 부딪혀 안에 타고 있던 고등학생들도 큰 부상을 입었었다.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간 정국이는 의료진의 빠른 대처로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달려간 태형이는 새근거리며 잠들어있는 정국이의 모습을 보고 안도했지만

이내 자신을 불러내 뜸을 들이는 의사의 태도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저..전정국씨 보호자분"

 

 

 

 

"네 제가 보호자에요"

 

 

 

 

"정국씨가 신경손상으로 하반신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네?..."

 

 

 

 

 

 

 

 

하반신 마비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저렇게 만든 새끼들 어딨냐면서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는 탓에 간호사와 의사까지 태형이를 말리려고 애를 썼었다.
어느정도 진정을 한 태형이가 누워있는 정국이의 손을 잡으면서 차라리 자신이 이런 일을 겪었어야 했다면서 나지막이 울부짖었다.

 

 

 

 

 

 

 

 

 

 

 

 

 

 

 

 

 

 

 

 

 

 

 

 

 

 

 

 

 

 

정국이는 전국대회를 목표로 하는 유망한 육상선수였다.
태형이가 정국이한테 첫눈에 반한날도 정국이가 열심히 트랙을 달리던 날이였다.
그날도 지금처럼 무더운 날이 지속되는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이제 뭐해먹고 살지"

 

 

 

 

 

 

 

 

대기업 회장의 아들치고는 후줄근한 옷을 걸쳐입고는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에 물고 먹고 살 걱정을 하는 태형이 앞으로

단체로 훈련을 나온 것인지 맞춰입은 체육복을 입고 달려가는 무리들이 지나갔다.

이 더운 날씨에 어떻게 저렇게 뛰어

자신이 뛰는 것도 아닌데 질색한 표정을 하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쳐다보던 태형이 한순간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고 콧대를 따라 흐르던 땀방울이 턱선을 지나 목까지 흘러내리는 모습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자치고는 큰 눈과 예쁘장한 얼굴이 무리들이 지나간 후에도 한참이나 태형을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멀어져가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쁘다 중얼거리고는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같은 시간대에 그 자리에 나와 정국이의 뛰는 모습을 구경했다.
처음에는 마주치기만 했던 것이 서로 고개 숙여 가벼운 인사도 하고 나중에는 번호도 교환하고 그렇게 순조롭게 연애라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종종 태형이와 얘기를 나눌때면 들뜬 얼굴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들려주던 정국이였다.

 

 

 

 

 

 

 

 

"저는 나중에 세계대회도 노려볼꺼에요, 달리는게 너무 좋아요"

 

 

 

 

"달리다보면 옆구리도 아프고 힘들지 않아?"

 

 

 

 

"그 느낌이 좋아요 숨이 차서 옆구리가 아프고 땀을 비 오듯 쏟고나면 아, 내가 살아있구나 하고 느껴요"

 

 

 

 

 

 

 

 

그런 자신의 연인이 하반신 마비라니 믿고 싶지도 믿을 수도 없는 꿈 같은 이야기였다.

 

 

 

 

 

 

 

 

 

 

 

 

 

 

 

 

 

 

 

 

 

 

 

 

 

 

 

 

 

 

깨어난 정국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형 저 진짜 죽는줄 알았어요 차가 막 달려오는데 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태형이 모습에 반쯤 몸을 일으켜 인사를 나누고는 당시 상황에 대해 얘기를 하던 정국이가

평소와 다르게 어두운 낯을 띄고 있는 태형이의 얼굴에 의아함을 느꼈다.

 

 

 

 

 

 

 

 

"목마르다 저 물 좀 마시고 올게요"

 

 

 

 

"아니! 정국아 내가 줄...게"

 

 

 

 

 

 

 

 

태형이가 말릴새도 없이 이불을 걷어내고는 움직이려던 정국이가 들리지 않는 하반신에 힘껏 힘을 주었지만 미동도 없이 가만히 놓여져 있는 두 다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형이와 제 다리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형 이거 왜 이래요? 이상하다 왜이래"

 

 

 

 

"..."

 

 

 

 

"여기 뭐 올려놨...아니, 마취한거에요? 왜 안움직이지"

 

 

 

 

"..."

 

 

 

 

"형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제발요 네? 태형이형"

 

 

 

 

 

 

 

 

애써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밝게 말하던 정국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태형이를 보자

울컥하고 올라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형 저 다리 못쓰는거에요? 그런거에요?"

 

 

 

 

"정국아..."

 

 

 

 

 

 

 

 

태형이의 부름도 소용없는지 혼자서 중얼거리던 정국이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면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런 정국이 모습에 가슴이 아파오는 태형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우는 정국이를 끌어안아 다독이는 것 밖에는 없었다.

 

 

 

 

 

 

 

 

"형..저 이제 어떻게 살아요"

 

 

 

 

"나 있잖아 정국아 제발"

 

 

 

 

 

 

 

 

이제 자신이 좋아하던 달리기도 세계대회에 나가겠다는 꿈도 모든게 산산히 부서진 정국이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연인 태형뿐이였다.

 

 

 

 

 

 

 

 

 

 

 

 

 

 

 

 

 

 

 

 

 

 

 

 

 

 

 

 

 

 

"정국이 지금 어디있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급하게 달려온 태형이가 안내데스크에 묻자 병실안에 있다는 간호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빠르게 병실로 달려가 문을 열어젖혔다.
새하얀 침대에 누워서 형 왔어요?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정국이한테로 다가가 두 어깨를 잡아 시선을 맞췄다.

 

 

 

 

 

 

 

 

"정국아 너"

 

 

 

 

"응 왜 불러요"

 

 

 

 

 

 

 

 

더 뭐라고 말을 해야되는데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에 깊은 한숨만 내뱉고는 시선을 내리는 태형이였다.
손목에 감겨진 하얀붕대를 보자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실에 누워있던 그 날이 생각나 가슴이 아려왔다.
몇달간은 병원에서 지내야한다는 의사의 말에 앞으로 내야할 병원비와 여러가지 필요한 돈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사자리에 앉은 이상

회사가 굴러갈 수 있도록 일을 해야했기에 정국이를 방치해둔 제 잘못이 컸다.
열심히 업무를 하는 도중에 걸려온 전화를 통해 정국이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일이고 뭐고 달려와 상태를 확인해보니 그런 생각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인 정국이를 마주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저 작은 머리로 몇번이나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내왔을까

이 모든 원흉이 자신인 것만 같아 정국이를 끌어안고 몇번이고 속삭였다.

 

 

 

 

 

 

 

 

"정국아 미안해 형이 미안해"

 

 

 

 

"왜이래요 낯간지럽게"

 

 

 

 

 

 

 

 

밀어내려는 손을 마주잡고는 한참을 그렇게 정국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그 날 이후로 병실안에 자살시도를 할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치웠다.
날카로운 것들 위주로 정국이가 생활하면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만큼의 물건들만을 남겨놓고

하루종일 무슨 일은 없는지 감시할 수 있는 간병인도 붙여줬다.
평일은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주말은 무슨일이 있어도 다 미루고 정국이를 만나러 왔다.
병실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넓은 병실이라지만 좁은 침대에 둘이 부대끼며 누워 작게 나 있는 창문 밖으로 별이 수놓아진 하늘을 보며 잠에 들었다.

 

 

 

 

 

 

 

 

"오늘 별 진짜 많이 떴다"

 

 

 

 

"예쁘네 우리 정국이보단 못하지만"

 

 

 

 

"아 형 그런 소리 할때마다 토나와요"

 

 

 

 

"뭐? 토할 정도야?"

 

 

 

 

 

 

 

 

키득거리면서 장난을 치다가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별을 올려다보고 있는 정국이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작게 속삭이듯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언제쯤이면 저 별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우주로 가거나 하면 볼 수 있을까"

 

 

 

 

"그러면 로켓이라도 타야겠네"

 

 

 

 

"꿈에서도 갈 수 있어요"

 

 

 

 

"그러면 얼른 자자"

 

 

 

 

"그럴까요"

 

 

 

 

 

 

 

 

눈을 맞추며 웃는 정국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미 네 자체가 나에게는 세상이고 우주야
빛나는 별들을 가득담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을때면 수많은 별들과 함께 우주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기분이 들어
너는 네 눈이 우주를 담고 있다는걸 알까

눈을 감는 정국이를 토닥여주면서 태형이는 생각했다.

 

 

 

 

 

 

 

 

 

 

 

 

 

 

 

 

 

 

 

 

 

 

 

 

 

 

 

 

 

 

또 다시 행복한 토요일이 돌아왔다.
오늘은 업무량이 적어 생각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면서 안쪽에 고히 모셔두었던 꽃다발을 꺼내들었다.
요즘 들어 부쩍 우주 얘기나 별 얘기를 자주하는 정국이였기에 직접 별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별을 닮은 꽃들을 모아서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기분좋은 꽃 향기를 맡으면서 병원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요란하게 휴대폰이 울려댔다.

 

 

 

 

 

 

 

 

"여보세요"

 

 

 

 

"태형씨! 지금...정국씨가!"

 

 

 

 

 

 

 

 

제대로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응급실로 뛰어들어간 태형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정국이를 찾아해맸다.
저멀리서 모여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보이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힘겹게 발을 뗐지만 몇번이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혔고

들고있던 꽃다발은 이미 바닥을 나뒹굴고 짓밟히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차오르는 눈물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침실에 누워있는 사람이 정국이라는걸 확인하자 축 늘어진 손을 잡고 오열하는 태형이였다.

 

 

 

 

 

 

 

 

"정국아!..제발 눈 좀 떠봐 응? 형 왔잖아"

 

 

 

 

 

 

 

 

지혈을 위해 감아놓았던 붕대와 솜들이 이미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정국이의 볼을 감싸고 몇번이고 입을 맞추어보지만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차가운 감촉만이 느껴졌다.
미친 사람처럼 구는 태형이를 떼어낸 간호사가 정국이 얼굴위로 흰 천을 덮어냈다.

 

 

 

 

 

 

 

 

"*월 **일 **시 **분..."

 

 

 

 

 

 

 

 

그렇게 빛나던 나의 우주는 사라졌다.
감은 두 눈안에 자리잡은 우주를, 빛나는 별들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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