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트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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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그리스신화에서 등장하던 사랑의 결실을 맺어준다는 큐피트가 현실에도 존재했다면 아마 멍청하다못해 미련한 놈이지 않을까 싶다.

내 큐피트가 실수로 저녀석한테 화살을 쏜건 아닐까

무뚝뚝하고 조용하고 얼굴만 반반한 저 후배녀석에게 말이다.

 

 

 

 

 

 

 

 

"윤기형! 여기요!"

 

 

 

 

 

 

 

 

시끄러운 비글 한마리, 그나마 조용한 비글 한마리를 각각 양 사이드에 끼고서 밥을 먹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시선이 몇초간 서로에게 머물러 있다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밥을 퍼먹는 동그란 정수리를 보며 입술을 씹어댔다.
녀석의 얼굴에 떠오르는 저 표정을 볼때마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렇게 크게 안불러도 알아들어"

 

 

 

 

"오늘 소세지볶음 진짜 맛있어요"

 

 

 

 

"너나 많이 먹어"

 

 

 

 

 

 

 

 

동문서답이 주특기인 김태형답게 소세지볶음 찬양이나하고 앉아있는 모습이 22살이 아니라 2학년 2반 초등학생 같았다.
분명히 머리로는 김태형이나 박지민 앞에 앉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몸이 지멋대로 전정국 앞에 자리를 잡은 탓에 쉬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묵묵히 밥을 먹고 있던 정국의 시선이 젓가락으로 반찬들을 뒤적거리고 있는 윤기의 식판으로 향했다.
툭하면 사소한걸로 옥신각신하는 비글 두마리를 구경하던 윤기가 열심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자신의 식판을 뚫어지게 보고있는 정국이를 발견했다.

 

 

 

 

 

 

 

 

"먹을래?"

 

 

 

 

 

 

 

 

언제 다 먹은건지 식판 가운데가 비어있었다.
소세지 볶음이 놓여있던 자리 같은데...자신의 식판에 놓여있던 소세지 하나를 집어들어 내밀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정국이 자연스레 입으로 받아먹었다.
놀란 윤기의 표정을 본 정국이 자신이 무의식중에 한 행동을 알아차리고는 굳은 표정으로 우물거리던 입을 멈췄다.

보통 건네주면 젓가락이나 숟가락으로 가져가 먹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아기새가 모이를 받아먹듯 바로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윤기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갑자기 벌떡 일어선 정국이 말없이 식판을 집어들어 식판 수거대로 가져다 놓고는 재빠르게 학생식당을 빠져나갔다.

 

 

 

 

 

 

 

 

"야! 꾹아 어디가!"

 

 

 

 

"정국아! 나 아직 다 안먹었는데, 형 저희 먼저 가볼게요!"

 

 

 

 

 

 

 

 

한참을 투닥거리다가 뒤늦게 정국이가 나가는 뒷모습을 확인한 태형과 지민이 헐레벌떡 뒤를 쫓았다.
남겨진 윤기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시발...귀여워"

 

 

 

 

 

 

 

 

 

 

 

 

 

 

 

 

 

 

 

 

 

 

 

 

 

 

 

 

 

전공수업은 그렇다쳐도 교양수업은 다른 학과랑 같이 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생판 모르는 얼굴들이 가득한 수업을 듣는것이 일반적이였다.
이제 지긋지긋한 교양수업도 이번학기가 마지막이였고 자신이 나름대로 흥미를 느끼는 과목이였기에 기분좋게 강의실문을 열고 들어선 윤기였다.
아직 수업시간까지 널널하게 남은 탓인지 빈자리가 가득했고 교수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강의내용은 잘 보일만한 좋은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창가쪽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익숙한 정수리가 눈에 띄였다.

 

 

 

 

 

 

 

 

"전정국이다"

 

 

 

 

 

 

 

 

이제 동그란 정수리만 봐도 그녀석인걸 알 정도가 된 자신이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낮게 읊조린 윤기가 지체없이 걸음을 옮겼다.
비어있는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자 흠칫한 정국이가 누군가하고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전정국 너 이 수업듣냐"

 

 

 

 

"네"

 

 

 

 

 

 

 

 

언제나 시선도 맞추지 않고 내뱉는 저 단답이 사람 속을 뒤집어놨다.
무심한 표정, 할말 없게 만드는 대답, 돌아가버린 고개 이 쓰리콤보를 겪는 날에는 하루종일 답답한 가슴앓이를 해야했던 윤기였다.
이젠 그마저도 익숙해지려고 하니 사랑을 하는게 아니라 체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순적인 하루 하루에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할지 막막했다.

큐피트 이새끼는 좋아하게 만들었으면 상대방을 어떻게 꼬셔야 하는지 알려주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전정국 가슴에 화살이라도 쏘던가 해야지

 

 

 

 

 

 

 

 

"너도 이 과목에 관심있었어?"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순간 앞뒤 상황 다 자르고 좋아했다는 말만 들었으면 고백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안그래도 흰 피부 탓에 붉어지면 금새 티가나는 윤기였기에 '아, 그렇구나' 대충 얼버무린 후 졸린 척 팔에 고개를 파묻고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할말이 없게 만들었지만 24살이나 되서는 짝사랑 상대를 눈앞에 두고 수줍어 한다는게 자기자신이 느끼기에는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였다.
좋아한다는 마음이란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과를 위하여~!"

 

 

 

 

"위하여!"

 

 

 

 

 

 

 

 

윤기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과모임이였다.
그냥 오순도순 모여서 회의하고 밥먹는거면 괜찮은데 꼭 호프집을 장소로 정해서 술을 퍼마신다는게 맘에 들지 않았다.
물론 술을 마시는것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였다, 다만 술자리를 빌미로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후배를 꼬신다던가 하는 그런식의 수법이 비일비지하니까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우리 게임하자 게임"

 

 

 

 

"**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무슨게임~ 게임 스타트!"

 

 

 

 

"눈치게임 1!"

 

 

 

 

"2!"

 

 

 

 

 

 

 

조용히 술 좀 마시려고 했더니 게임을 하자는 말이 나오자 시끄러워진 테이블에 인상을 찌푸리던 윤기가

일찍 끝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5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맞은편에 앉아있던 정국이도 같이 몸을 일으켰다.

전정국이랑 같이 일어났다, 통한건가

 

 

 

 

 

 

 

 

"오오~! 민윤기랑 정국이 러브샷 가자 러브샷"

 

 

 

 

"남자끼리 뭔 러브샷이야"

 

 

 

 

"야! 우리과 대부분이 남자거든? 재미없게 이럴래?"

 

 

 

 

 

 

 

 

얼른 하라고 부추기는 목소리가 하나 둘 커져가고 당황한 표정을 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정국이를 보며 짝사랑 상대랑 러브샷이라니

좋아해야 될 일인지 곤란해야 할 일인지 알 수 없는 윤기가 걸음을 옮겼다.
서로 마주보는 상태가 되자 평소에도 큰 눈이 몇 배는 더 커져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정국이의 얼굴 탓에 이상한 기분이 드는 윤기였다.

어차피 끌어안고 술만 마시면 되는건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건지

술잔을 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오는게 행여나 누가 볼까 급하게 정국이 뒷목으로 팔을 감싸며 속삭였다.

 

 

 

 

 

 

 

 

"얼른 하고 끝내자 잔 들어"

 

 

 

 

 

 

 

 

살짝 떨려오는 목소리를 알아챘을까
정국이의 표정이 어떤지 보고싶었지만 거의 끌어안는듯한 자세에 보이는거라곤 고르게 자리잡은 귀와 곧게 뻗은 목덜미뿐이였다.
이 자식은 귀도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뒷목을 감싸오는 정국이의 손길에 망설임 없이 잔을 들이켰다.
몇초도 안걸렸을 그 시간만 늘어난 테이프처럼 천천히 스쳐지나가는 느낌에 쓰디 쓴 술맛이 배로 느껴졌다.

전정국 귀 빨개졌네

 

 

 

 

 

 

 

 

 

 

 

 

 

 

 

 

 

 

 

 

 

 

 

 

 

 

 

 

 

 

같은 교양수업을 들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종강이라니 하늘이 무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못내 아쉬운 윤기였다.
유일하게 정국이를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졸음이 쏟아질 것 같은 교수님의 수업도 열심히 들을 수 있었고

가끔 잠을 못이기고 꾸벅꾸벅 조는 정국이를 몰래 구경하면서 만족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였다.
종강이란 단어가 들려오자 이제 곧 방학이라는 것과 이 녀석 없는 몇개월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오늘 이 수업 종강이잖아 기분 좋냐"

 

 

 

 

"네 방학이니까"

 

 

 

 

 

 

 

 

방학이니까 들떠있을줄 알았는데 묘하게 가라앉은 얼굴하며 약간의 뜸을 들이면서 말하는 것도 그렇고 기분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너도 기분 안좋냐 나도 기분 안좋은데 너 못보니까

속으로는 얼마든지 떠벌릴 수 있는 말을 곱씹으며 출석체크를 하시는 교수님의 부름에 애써 담담한척 크게 대답했다.
다른 수업때보다 훨씬 더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었다.
옆에 있는 전정국 또한 그런것인지 아까부터 공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고 지우고 반복하고 있었다.
내용이 궁금해서 조금이라도 정국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려고 하면

거의 엎드리다싶이 고개를 숙이고는 철벽방어를 하는 탓에 무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뭐해'라고 적은 종이쪽지를 슬쩍 건네자 펴보고는 종이를 뒤집어서 적어내렸다.
사각거리는 연필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게 침울했던 기분이 서서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중 고등학교때나 하던 쪽지 주고받기를 대학교와서 할줄이야
전정국은 나를 유치하게 만드는 신비한 재주가 있는게 아닐까

그 작은 종이에 쓸게 얼마나 많다고 아까부터 숙여있던 고개가 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썼다 지우는 통에 너덜너덜해진 종이쪽지가 손위에 놓여졌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선배 생각이요'

 

 

 

 

잘못 쓴건가 싶어 몇번이고 들여다 보아도 정갈한 글씨체로 써져 있는 것은 선배 생각이요 였다.
정국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교수님을 쳐다보면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아니, 귀 끝이 빨개진거 보면 아무렇지 않은건 아닌가보다.

 

 

 

 

 

 

 

 

 

 

 

 

 

 

 

 

 

 

 

 

 

 

 

 

 

 

 

 

 

 

"날씨 너무 덥다"

 

 

 

 

"죽기 좋은 날씨야"

 

 

 

 

"형 아이스크림 사줘요"

 

 

 

 

"네가 사다먹어"

 

 

 

 

"와 진짜 이러기야"

 

 

 

 

 

 

 

 

종이쪽지가 원인이라면 결과는 성공적인 고백이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녀석을 끌고 나가 대뜸 예전부터 너 좋아했어 그러니까 사귀자 강요하는건 아냐 거절할꺼면 거절해 라고 속사포로 쏟아붓자

어버버 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생각해보니까 너 진짜 바보같았다"

 

 

 

 

"뭐요?"

 

 

 

 

"고백 받으니까 당황해서는"

 

 

 

 

"그때 얘기 안하기로 했잖아요"

 

 

 

 

"귀여워서"

 

 

 

 

"닥쳐요"

 

 

 

 

"애인한테 닥쳐요가 뭐야 임마"

 

 

 

 

"애인한테 임마가 뭐에요 임마가"

 

 

 

 

 

 

 

 

투닥거리더니 더운 날씨 탓인지 다시 늘어진 정국이를 보며 가지고 있던 부채로 부채질을 해주던 윤기가 말을 이어나갔다.

 

 

 

 

 

 

 

 

"난 처음에 무뚝뚝하고 조용하던 네가 왜 좋아진지 몰라서"

 

 

 

 

"네"

 

 

 

 

"현실에도 큐피트가 있다면 그 새끼가 실수로 화살을 잘못 맞춘 줄 알았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어"

 

 

 

 

"그게 뭐에요"

 

 

 

 

"그냥 그랬다고 비웃냐"

 

 

 

 

 

 

 

 

뜬금없는 윤기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던 정국이가 손에 든 부채를 빼앗아 윤기한테 부채질을 해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거 실수 아니에요"

 

 

 

 

"뭐가"

 

 

 

 

"제가 매일 좋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니까 실수 아니라 정확히 맞춘거에요"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리는 정국이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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